공무중 입은 부상, 즉 '공상'을 인정받느냐 아니냐는 문제는 소방관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. <br /> <br />문제는 희귀 질병에 걸렸을 때 질병의 원인을 소방관 본인이 입증해야 한다는 점입니다. <br /> <br />국가가 책임지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불길 속으로 뛰어들까요? <br /> <br />최주현 기자의 더 깊은 뉴스입니다.<br /><br />[리포트]<br />어렵사리 계단을 내려가는 노인. <br /> <br />14년 전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 화마와 싸웠던 소방관 이실근 씨입니다. <br /> <br />[이실근(62세)/ 전직 소방관] <br />"출구 앞에서 검은 농염이 뭉게구름 올라오듯이 뭉실뭉실하다가 콱 올라왔어요." <br /> <br />그는 지금 불이 아닌 국가와 싸우는 중입니다. <br /><br /> 참사 발생 5년 뒤, 이 씨는 갑자기 소뇌위축증으로 쓰러졌습니다. <br /> <br />신체의 움직임과 감각을 통제하는 소뇌의 크기가 줄어드는 소뇌 위축증은,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희귀질환입니다. <br /><br />1만 3천 번 넘게 불속에서 사투를 벌였지만 병원비는 고스란히 이씨가 떠안게 됐습니다. <br /> <br />[이실근/ 전직 소방관] <br />"비통함을 느끼지. 헌신하면서 열심히 인명구조하고 연금 받아서 병원비에 3분의 2는 다 써버리고…" <br /> <br />공상이 인정되면 약값은 물론 수술비와 재활비용까지 지원되고 장애 연금 등 혜택을 받습니다. <br /><br />하지만 2번에 걸친 심사에서 이씨의 공상 신청은 모두 기각했습니다. <br /><br /> 희귀질환과 업무의 연관성을 본인이 입증해야 한다는 법조항이 발목을 잡았습니다. <br /><br />사진 속에서 밝게 웃고 있는 제복 차림의 남성. <br /> <br /> 3년 전 혈관육종암으로 세상을 떠난 김범석 소방관입니다. <br /> <br />[김정남 / 故김범석 소방관 아버지] <br />"너는 살아 생전에 최선을 다했고, 불 속에 뛰어들고 물 속에 뛰어들면서 많은 사람을 구했는데…" <br /> <br />[최주현 기자] <br />"공무상 재해 인정을 받기 위해 소방관 본인이 직접 힘든 싸움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, 소방관이 입증하지 못하고 사망했을 경우엔 남은 가족들이 대신 외로운 싸움을 해야 합니다." <br /> <br />350여 명의 목숨을 구한 소방관 아들의 마지막 부탁. <br /><br />다름아닌 공상 인정이었습니다. <br /> <br />하지만 행정소송에서 패소하며 남은 가족들은 긴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. <br /><br />최근 5년간 공상 신청을 한 소방공무원은 2천 2백여 명. <br /> <br />이가운데 탈락한 12%는 대부분 희귀질환을 앓고 있습니다. <br /><br />1차 심사를 맡은 공단 측은 공정한 심사였다고 주장합니다. <br /> <br />[공무원연금관리공단 관계자] <br />"공무와 인과관계가 부족하기 때문에 안 됐죠. 객관적으로 최대한 정확하게 심사한 것입니다." <br /> <br />그럼 2차 심사는 어땠을까. <br /> <br />재심 위원은 공무원 3명과 변호사 3명, 의사 3명. <br /> <br /> 9명이 참여했지만 직업 환경과 질병 관계를 연구하는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없었습니다. <br /><br />[A씨/ 당시 공무원연금급여재심위원회 위원] <br />"외과 있고, 내과 있고, 정형외과 있고… 대개 그런 식으로 구성됐죠." <br /> <br />[최주현 기자] <br />2시간 동안의 재심에서 안건에 올라가는 사례는 보통 130여 건. <br /> <br />한 건을 다루는데 1분이 채 걸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, <br /><br />희귀질환은 심의가 어렵기 때문에 아예 소송을 내라며 부결시키기도 합니다. <br /> <br />[B씨/ 당시 공무원연금급여재심위원회 위원] <br />"희귀질환 같은 경우나 깊이 있게 들어가야 할 것인 것은 부결을 시키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." <br /><br />9·11 테러 때 많은 소방관들을 잃었던 미국은 우리와 반대로 질병과 업무 사이에 관련이 없다는 점을 국가가 입증해야 합니다. <br /><br /> 우리 국회도 두 달 전 비슷한 법안을 발의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습니다. <br /> <br />[안연순/ 동국대학교 일산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] <br />"근본적으로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질병이 너무나 많잖아요. 연구 결과가 없는 것인데, (공상이)아니라고 해석하는 게 많은 거예요." <br /><br />오늘도 소방관들은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 위험 속으로 뛰어들고 있습니다. <br /> <br />채널A 뉴스 최주현입니다. <br /><br />최주현 기자(choigo@donga.com) <br /> <br />글 구성-전다정 장윤경 <br />영상취재-박재덕 <br />영상편집-김지균 <br />그래픽-김민수 양다은